연쇄살인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뭐라 변명해도 소용없다. 
'정치적 타살', '포괄적 살인죄'... 이름은 무엇이 됐든 그것은 살인이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도 그 살인에 일조했다는 사실이다.
내 자신부터, 빈소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까지...
왜 우리는 '그'가 살아있었을 때 이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는가?
검찰과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언론을 이용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갈 때 우리는 왜 방관했는가?
용기가 없어서? 나 혼자 나서봐야 소용없으니까? 경찰이 무서워서?
'강도 만난 사람의 비유(착한 사마리아인)'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제사장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가?
우리 중엔 착한 사마리아인이 없었다. 
당신도.. 나도.. 아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린 강도 만난 사람을 철저히 외면했고 그는 결국 신음하다가 죽었다. 

두렵다. 
우리가 슬금슬금 흩어지고 촛불을 끈 사이 '그들'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처럼
또다시 우리가 이 슬픔에서 벗어나 흐지부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즈음
'그들'이 이번엔 우리의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을지?
우리의 민주주의는 이미 강도를 만났다. 이것은 당신도, 나도 아는 사실이다.
이 정권은 그 시작과 함께 민주주의의 숨통을 조여가고 있다. 심지어 이젠 더이상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변명하는 일에도 지쳐서인지 이젠 '그들'마저도 더이상 둘러대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이는 '그들의 살인'의 완성이 임박해 왔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신줄을 놓고 있는' 사이에 그들이 우리의 민주주의까지 절벽에서 떠밀어 버릴지도 모른다. 
난 두렵다. 

'그'는 잃었지만 '민주주의'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를 잃었으니 '민주주의'만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주의'마저 잃으면 우린 죽어서 '그'를 무슨 낯으로 마주할 것인가?

그를 잃었다는 사실이 처음엔 별로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하루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더 아프다. 
민주주의를 잃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린 또 쳇바퀴같은 일상에 파묻혀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의 우리의 삶은 하루 하루 시간이 갈수록 더 괴로워져 갈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있는 것을 지키는 일은 쉽지만, 잃은 것을 되찾는 일은 어렵다.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서로 서로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고, 또 동참하자.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by junhalee | 2009/05/28 00:15 | Note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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