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18일
장영희 선생님
교회 주보 속에 실린 글 한토막이 당신과 저의 첫만남이었습니다.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의 일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주보 속에 실린 글 한토막이 수필집으로, 수필집이 영시선으로, 영시선은 또 다른 책들로... 그렇게 저의 경청은 시작되었습니다.
전 자기 안의 고통을 더 꼭 끌어안아 자신의 열정으로 그것을 녹여내고, 결국엔 그 고통을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더 크게 일어서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늘 동경했습니다. 그런 제게 삶 전체를 짓누르던 고통을 녹이고 풀어내어 실을 짓고 그 실로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 내는 듯한 당신의 삶은 멋지다 못해 눈부시기까지 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난 당신의 삶을 그토록 동경하면서도 단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 지를... 살아있다는 자체가 당신에게 얼마나 힘든 투쟁이었을 지를...
책을 읽고 나서 메일을 드렸습니다. 언제 한번 찾아뵙고 싶노라고... 엄청난 얘기를 할 것도, 들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가까이에서 호흡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고 답없는 편지가 되어도 섭섭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잔뜩 움츠려든 말로 조심스럽게 드린 요청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저의 소극적임을 부끄럽게 할 정도의 흔쾌한 승락이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 있으니 몇달 후에 다시 연락을 달라던 그 대답은 어쩌면 우문현답이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두번째 메일을 드렸을 때, 당신께 받은 편지에서 제가 느꼈던 것은 약간의 '노기'였습니다. 지금의 삶이 너무 벅차고 고통스러워 나에겐 여유가 없다는 투의 대답. 건강이 더 나빠져 의사로부터 경고를 들었노라고, 그럼에도 더 바빠져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당신의 편지에 조금쯤 서운하기도 했고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바쁘기에 1시간 정도의 시간도 내주기 어려운걸까? 그토록 밝게 대답해주셨던 분이 왜 갑자기 이렇게 퉁명스러워지신 걸까? '지나시는 길이 있으시면 짬은 낼 수 있겠지요.' 라고 덧붙인 말이 있었음에도 번거롭게 해 죄송하다는 대답의 메일밖엔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떠나신 지금 이제와 후회합니다. 당신께 귀찮게 굴더라도 잠깐이라도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었더라면...
그리고 이제와 깨달았습니다. 편지 속 당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사실이었고, 현실이었고, 당신의 삶을 반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난 정말 몰랐습니다. 당신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아니 어쩌면 그런 어려움과 고통이 존재하는 지조차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의 편지에서 사실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부고 기사를 읽고 지난 몇년간의 당신의 삶을 보면서, 당신이 당신의 어머니께, 그리고 주변 분들께 남기셨다는 말씀들을 보면서 전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한번도 뵌 적 없으나 당신은 저의 삶에 참으로 큰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당신이 떠나신 후 남겨진 제 마음속의 빈자리를 확인하고서야 당신이 제게 얼마나 든든한 선생님이셨는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길에 방향을 제시해 줄 선지자를 또 한 분 잃었습니다. 저의 또다른 선생님 중 한분은 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소중한 것이 '스승'을 만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전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무서운 일은 그 '스승'을 잃는 것이라고...
선생님.
제겐 당신이 몸으로 보여준 그 삶이 곧 경전이었고,
당신이 목발로 짚고 간 그 길이 곧 진리였습니다.
당신은 진정 저의 선생님이셨습니다.
베풀어 주신 가르침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언제 저도 여유를 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라고 하셨죠.
그대로 이루어졌을 거라 믿습니다.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by | 2009/05/18 00:01 | Notes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벌써 한 달이 지났네요. 장영희 선생님이 별세하신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도... 한참 패닉상태에 빠져 있다가... 너무 간만에 살짝 흔적 남기고 갑니다.
평화와 사랑이 공존하기 힘든 삶이 고통이 될지라도 '사랑 없는 평화'보단 '평화 없는 사랑'을 택할 수 있길, 그런 삶을 살길 바란다는 선생님 글이 떠오르네요. 이곳에선 평화 없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니... 지금은 '평화와 사랑'이 공존하는 곳에 계실 거예요. 분명...
올 여름은 그리운 사람이 너무도 많을 것 같네요. 유난히..
그래도 다행이죠. 눈만 돌리면 언제든 눈부신 신록을 맘에 담을 수 있는 계절이니까요. ^^
어떻게 지내셨는지...
푸르른 날들이라 저도 참 좋네요. ^_^